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20호) 후원회원 이야기 -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자”

재단활동 2020. 12. 31



 

후원회원 이야기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자”는 말이 남긴 것
- 떠나간 노회찬의 동지 되기



어느새 성큼 다가온 연말- 안 그래도 한 해가 끝나가며 느껴지는 헛헛한 감정을 코로나19가 더 쓸쓸하게 하여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노회찬 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번 달 민들레 소식지 후원회원 이야기에 실을 원고를 부탁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저 같은 일반 후원회원에게 글을 실을 기회를 주신 데에 감사하면서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곰곰이 고민해보고서, 노회찬 의원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그저 시민인 제가 어떻게 왜 후원회원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이 어쩌면 “후원회원 이야기” 코너의 취지와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노회찬 의원님과 아무런 일면식도 없었고, 그의 열렬한 지지자도 아니었습니다. 노회찬 재단이 설립되던 즈음 저는 대전에 위치한 생명과학 연구실에서 학위과정을 밟는 중이었습니다. 논문을 쓰기 위한 데이터를 만들고자 아침부터 자정까지 대장균을 키우고 단백질을 정제하며, 고단한 학생노동자로서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이 오늘같은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어요. 다만 그런 일상 속에서 당장 해내야 하는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진보적 의제에 깊이 공감하며 실험실 바깥,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일들에 틈틈이 귀를 열어두고자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노회찬 의원은 점점 더 반짝이는 인물로 다가왔습니다. 알아갈수록 정의롭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늘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 서서 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는 ‘진짜 정치’를 하는 섬세하고 유능한 정치가이자, 동시에 정치를 어려워하는 대중에게 쉬운 언어로 설명하고 이해시켜주는 친절한 평론가. 진보정당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정치의 쇄신에 힘써온, 굳건하고 든든한 기둥같은 진보정치인. 뉴스로 접하는 그의 의정활동은 항상 가슴에 감동을 남겼고, ‘노회찬’의 이름이 들어있는 뉴스는 언제나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특유의 이웃집 아저씨같은 걸걸하고 익살스런 음성으로 툭툭 내뱉는 촌철살인의 말들은, 답답하고 복잡한 사안들에 명쾌한 통찰을 건네주곤 했습니다. 특히 매주 수요일, 라디오 방송에 특유의 시그널 음악과 함께 노회찬 의원이 등장하는 날이면, 한 주도 놓치지 않고 시간 맞춰 귀에 이어폰을 꽂곤 했습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던 도중, 믿기지 않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아침에 단백질 정제 기계를 돌려두고서 잠시 커피 한 잔 마시다가, 핸드폰 어플로 속보를 확인하고선 어디서 이런 대형 오보가 났나 생각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에 검색해보고 수도없이 새로고침 하다가 이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간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거의 종일을 노회찬 의원에 대한 글을 찾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와 개인적인 관계도 전혀 없는 한 정치인의 죽음에 왜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지 저 스스로도 의아했어요. 이해도 되지 않을뿐더러, 풀기도 힘든 슬픔이었습니다. 주변 모두가 노의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는 있었지만, 개인적인 인연이 없는 누군가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맘껏 꺼내어 함께 나눌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SNS 타임라인이 제가 올리는 노회찬 의원 관련 글들로 도배되는 데에 신물이 났는지, 좀 그만하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노회찬 의원 추도식이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고 곧장 기차표를 예매했습니다. 실험실의 일과가 하루 종일 진행되다 보니 저녁에 서울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참여하려면 일과 절반을 비워야 했지만, 일과의 대부분을 노회찬으로 채우고 있던 저로선 추도식에 가는 것보다 가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는 라디오와 팟캐스트 방송들을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힘든지에 대해서 스스로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노회찬은 너무나 커다란 사람이었구나. 내가 어렴풋이 알던 것 이상으로 대단한 일을 해왔고, 또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을 아무도 대체할 수 없겠구나. 그가 만들어왔던 역사를, 해왔던 역할을 해낼 사람은 없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습니다.

연세대 강당에 도착해 영전에 국화꽃을 바치고,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기 위해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았습니다. 6411 버스 연설 영상을 시작으로 터져나온 눈물이, 거의 두 시간 내내 멈추질 않았습니다. 노회찬의 친구와 동지들이 하나 둘 나와서 그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그 안에 있던 모두와 함께 뜨겁게 울었습니다. 제 3자인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마음이 참담할 노의원의 가족 친구 동지들이 담담히 추억하는 노회찬을 들으며 저의 마음도 점점 더 무거워졌지만- 모든 분들이 당부하고 다짐했던 한 마디가 마음깊이 남았습니다. 노회찬은 떠났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것.

노회찬은 이미 떠나고 없는데 누가 어떻게 노회찬이 된다는 말인지, 그 메시지가 누군가에게는 공허하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각자의 일상을 보내다가 함께 모여 같은 마음으로 뜨겁게 눈물 흘리고,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겠다고 다짐하고서 백양로 길을 걸어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회찬이 없는 세상에서 노회찬이 된다는 것은, 노회찬의 동지가 된다는 것은, 그가 뿌리던 씨앗을 내 안에 잘 가꾸고, 아직 심어지지 않은 곳곳에 뿌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가 살아왔던 모습처럼 온 삶을 바쳐 헌신할 수는 없더라도, 각자의 일상을 보내다가 같은 마음으로 모인 이 사람들처럼,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해간다면- 비록 노회찬은 떠나갔지만, 노회찬의 동지를 자처하는 모두의 힘으로 노회찬이 꿈꾸던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가 정말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다시 돌아온 일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고, 노회찬 의원님의 빈자리도 역시나 컸습니다. 우리 사회에 반향이 있는 큰 사안이 있을 때마다, 노회찬 의원님이 계셨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참으로 궁금하지만,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자고 함께 외쳤던 다짐이 내 안에 어떤 씨앗을 뿌렸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마음만 보낼 뿐 나와 크게 관련 없는 일로 생각했던 여러 사회문제들을 바로 내 곁에서 누군가가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체감하기 시작했어요. 이웃한 연구소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연구원 노조 분들의 이야기들,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청소 노동자 선생님들의 상황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될 때까지 나의 자리에서 한조각의 노회찬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회찬 재단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 고민없이 당연스런 마음으로 후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후원을 함으로써, 노회찬 재단을 통해 노회찬 의원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노회찬의 동지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듣고 싶었고, 그를 통해 “우리 모두 노회찬이 되자”는 외침을 잊고 싶지 않은, 어찌 보면 오히려 나 자신을 다지기 위함이 후원의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는 노회찬 재단에서 보내오는 노회찬 의원에 대한 이야기들과 소식들을 차곡차곡 읽으며, 노회찬을 잊지 않고 노회찬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회찬의 동지들에게 작은 후원금으로나마 한껏 응원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한창 코로나19로 괴로운 시기를 보내던 올해 가을, 노회찬 정치학교 2기 수강생 모집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년 그맘때쯤 노회찬 정치학교 1기 수강생 모집 소식을 들었지만 여건상 참여하지 못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 원서를 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100%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수업이기에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컸지만,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모일 수 있다는 점은 커다란 이점이기도 했습니다. 전국에서 스무명 넘는 수강생들이 7주간 매주 3시간씩 Zoom 플랫폼을 통해 한 화면에 모였고, 코로나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또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귀중한 선생님들께 강의를 듣고 생각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십대 청소년부터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까지, 당적 없는 일반 시민들부터 노의원의 당원동지들까지- 노회찬 의원의 뜻을 배우고자 함께 모인 각양각색의 수강생들을 보며, 2년 전 추도식 때 느꼈던 왠지 모를 든든한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얼마 전 수료식을 가진 후에도 노회찬 정치학교 2기 수강생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이어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배우고 나눴던 것들을 잊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노회찬의 씨앗을 잘 가꾸어나가려 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노회찬 의원님이 계셨다면 어떤 혜안으로 현명한 대책을 제안해 주셨을지 너무도 궁금하고 그래서 또 그립지만- 분명 노회찬 의원님은 저희가 정치학교에서 배웠듯, 코로나19로 인해 불거진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 의해 특별히 더 크게 고통받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더 세심히 눈길을 보내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진보적인 의제를 이끄셨으리란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그 분의 빈자리를 느끼게 되겠지만, 그때마다 노회찬의 씨앗이 뿌려진 어디선가, 해결의 보탬이 될 열매가 맺으리라 믿습니다.

늘 노고가 많으신 노회찬 재단에 아낌없는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노회찬 재단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노회찬의 동지들이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노회찬 의원이 꿈꾸던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기를 마음으로 바라며, 저도 제 자리에서 후원회원으로서, 감히 자청하는 마음속 동지로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 이한솔 (카이스트 연수연구원, 노회찬정치학교 2기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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