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21호) 문화인 노회찬 - 안간힘에 대하여
문화인 노회찬
안간힘에 대하여
당원게시판에 올라오는 노회찬 의원의 <난중일기>를 즐겨 읽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평화로운 시절의 일기가 아니라 전란 중에 쓰는 일기. 당연히 이순신 장군의 삶과 글을 가슴에 품고 정한 제목이다.
노 의원은 바쁘다는 핑계로 건너뛰지 않고 바쁠수록 더 자주 길게 적었다. 전장(戰場)에 없는 이들이 읽더라도 충분히 상상할 만큼 풍부하게 쓰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역사를 탐독하는 사람만이 구사하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엄중하고 심각한 일에 짓눌렸다가도, 장산곶매처럼 훌쩍 날아오른 뒤 상황 전체를 조감했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 갇히지 않고 큰 흐름을 살피는 것이다. 그 흐름은 1945년 광복부터 시작하거나 1876년 개항부터 시작하거나 1392년 조선 건국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이 일과 그 일을 비교하고, 이 사람 대신 그 사람을 바꿔 넣고, 이 질문에 그 질문을 겹쳤다.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독특함은 현재와 과거의 자유로운 뒤섞임에 있다.
‘노회찬 어록’은 대부분 사건의 맥을 정확히 짚는 데서 출발한다. 임기응변과 순발력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능력이다. 흐름을 미리미리 공부하고 정리하지 않는다면 맥이 보일 리 없다. 장강(長江)의 폭과 깊이와 빠르기를 알기에,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문장을 수면 위로 은어처럼 튕겨 올리는 것이다.
느닷없이 빛나는 문장 아래로는 노 의원이 이미 점검을 마친 시간의 강이 흐른다. 어록을 접한 이들 누구나 그 강에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맡긴다. ‘50년 된 삼겹살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2004.03.20)를 들으며 50년 정치사를 떠올리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만 명만 평등한 것이 아닌가요?’(2004.10.14)라는 물음에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나날에 쓴웃음을 짓는 식이다. 16세 참정권을 지지할 때는, 17세에 유신반대 삐라를 뿌린 노 의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후, ‘유관순 열사는 불량소녀가 아닙니다’(2017.03.05)에 이른다.
전시(戰時)라고 매일매일 전쟁만 하진 않는다. 전투를 벌이지 않는 날이 훨씬 많다. 그땐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일상을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반복된 정성들이 모여 역사를 한 걸음씩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일상의 안간힘들은,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며 흘러온 역사를 궁구하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다. 새벽 4시 6411번 버스는 어김없이 출발해왔지만, 매일 그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겨 세상에 소개한 이는 노회찬 의원이다.
역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거기엔 일상의 안간힘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노회찬 의원이 모범을 보인 방식을 따라, 그가 반복해서 정성을 쏟은 일을 찾고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 김탁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