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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30호) 후원회원 이야기 - 정의당 창당 9주년 노회찬을 기억하다

재단활동 2021. 11. 02



▲ 2010년 서울시장후보 노회찬 선대위원장 신언직과 4대강에 맞선 까발리아 선거운동



후원회원 이야기

정의당 창당 9주년 노회찬을 기억하다



9년 전 정의당을 창당할 때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을 시작으로 두 번째로 통진당과 분열해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 어찌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날 노회찬 대표의 6411 연설이 있었습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 투명인간들이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그런 진보정당을 다시 해 보자고 혼신의 힘을 다해 호소했습니다. 

노선배 당신도 내색은 안하지만 많이 힘들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노회찬 대표와의 인연은 오래전 청주교도소 감옥살이가 시작인데, 그때 노회찬 대표는 지금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말수도 적으시고 늘 신중한 모습이었습니다. 몇 년 후 TV토론에서 빵터지는 유머와 맛깔나는 비유 그리고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과 설득력 있는 달변은 당시 징역을 같이 살았던 동기들을 놀라게 했으니까요. 두 모습 다 저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참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대대적인 탄압으로 감옥이 넘쳐났고, 동구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운동진영이 혼란했습니다. ’서른잔치는 끝났다‘며 많은 이들이 떠났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대다수도 무엇을 어떻게 할지 길을 찾는 시기였습니다.

저 역시 예외일 수 없어 하루는 조용히 노대표님 방으로 찾아갔습니다. 요즘 상영되는 6411 영화에 나왔듯이 노대표님 제안으로 오전에는 자기학습의 시간을 갖기로 하여 각자 독방에서 문을 걸어 닫고 생활해서 오후에 찾아뵈었는데 한쪽 벽면에 책으로 가득 찬 라면박스가 층층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 대중가요 200선 노래책과 요리백과사전, 클래식 악보 등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로선 의외였는데 나중에 보니 방송토론 때 음식 비유가 많았고 직접 요리하는 장면도 SNS 종종 올라오기도 해서 그게 다 우연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선배님.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입니다. 출소해서 노동운동을 하고 싶은데 아시다시피 저는 유명한 대중운동가도 뛰어난 이론가도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신동지. 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를 봤나. 네 봤습니다. 거기 보면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마차를 몰고 대저택을 빠져나가는데 큰 화재가 나서 말들이 당황해서 나가지 못하고 주춤거리지. 그러자 주인공이 말의 머리에 검은 보를 씌우고 채찍질해서 불길을 뚫고 나가지. 

아마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하네. 혼란의 시기에 좌고우면하기보다 스스로 자기 눈을 가리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네. 나라고 대단한 길이 있겠나.

창당 9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노대표님이라고 창당대회 때 6411 연설을 하면서 왜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정의당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놓고 떠나셨습니다.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던지면서 우리에게 당당히 앞으로 나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을 것 같습니다. 이제 기호3번 대선후보를 배출한 정의당이니 눈 가리지 말고 두 눈 부릅뜨고 앞으로 나가라고요. 감사합니다. 노대표님. 아니 노선배님.


- 신언직 (정의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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