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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30호) 후원회원 이야기 - 잘 가요 회찬아저씨

재단활동 2021. 11. 02




후원회원 이야기

잘 가요 회찬아저씨



“잘 했어.” 어느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등을 두드려준다. 

2002년 이었던가... 나는 어느 대학교 법과대학 학생회장이었고 뜨내기로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청계천 한 구석 바닥에 방치되어 있던 전태일열사의 동판에 쓰레기가 쌓여있는 곳을 보고 후배들과 치우고 동상을 건립하겠다며 다소 무모하게 온라인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몇 군데 언론들이 이를 보도해주었다. 이 때문에 전태일열사 동판 근처에서 개최되었던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새해 행사에 초대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내 등을 두드려주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당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이었던 노회찬이었다. 

그 이후 노회찬의원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2004년 ‘삼겹살 불판’, ‘산천어, 열목어’ 발언 등 수많은 어록을 남기며 진보정치인으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의 활약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지지율이 고공상승하며 10석 당선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아직도 2004년 개표방송을 보며 느꼈던 희열, 감동이 생생하다. 진짜 그 땐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성공과 진보정당 집권이 얼마 안 남았다는 희망이 크게 느껴졌으니. 

비록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 통합진보당 – 진보정의당 –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고된 정치역정과 격동을 겪기는 했지만, 노의원은 늘 한결같이 진보정당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편하고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각인시켰고 본인도 더 깊고 단단한 진보정치인이 되어갔다. 나도 늘 노의원을 지지하며 그가 가는 정치적인 역정에 당원으로서 함께하였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내 곁에는 나보다 더 진보적이고 왼쪽에 있는 훌륭한 동지들이 있고 여전히 나는 그들과 함께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대중적인 진보정치인이라면 노의원처럼 활동해야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치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노의원의 의견과 발언에 공감하고 지지를 했었고, 노동자분들을 노동법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파묻혀서 다소 지칠때면 그가 했던 수많은 어록을 찾아보고 웃으면서 기분전환을 해오곤 했다. 

노의원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건 금속노조법률원 충남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회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혜훈의 말처럼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고, 박규님 선배의 말처럼 세상이 정지된 느낌이 들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서면과 상담 등 일이 쌓여있는데도 모두 미루고 이틀을 집에 쳐박혀서 울며 지냈다. 무엇보다 세상에 온갖 비리와 거짓으로 점철된 더러운 정치인들이 많은데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나처럼 마음을 담아 지지하는 사람들을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납득이 안 되었다. 도대체 노회찬이 없는 진보정치가 가능할지... 걱정과 한숨뿐이었다. 

너무 좋아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이렇게 외면하고 벗어나고 싶은거구나. 그 이후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이 사라졌고, 수시로 찾아보던 어록을 보지도 않게 되었으며, 심지어 노회찬의원을 기리고 추모하는 재단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로서 노동자분들을 법적으로 지원하고 투쟁에 함께하는 일에만 파묻혀 살았다. 

얼마 전 새벽에 사무실에서 서면을 쓰다가 갑자기 불현듯 생각이 나서 사무실 근처 영화관으로 달려가 ”노회찬 6411“을 보았다. 솔직히 영화적으로 잘 만든 영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타이밍이 아닌 즐거운 어록 장면, 그가 환하게 웃고 있는 장면 등에서 눈물이 막 쏟아졌다. 너무 그리워서 잊으려고 했던 사람의 얼굴과 삶의 장면을 보아서 그랬던 것인가... 이상하게 수시로 눈물이 쏟아졌고, 영화가 끝나고 서포터즈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까지 거의 10분 동안 자막이 올라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너무 보고싶고 그리웠다. 

영화를 보고나서 며칠동안 일이 잘 안되어서 밤마다 그동안 보지 않았던 노회찬 tbs다큐, mbc다큐 등을 모두 보고 그를 추억하는 글들을 많이 읽었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이제 그를 기리는 일에 미력하나마 함께 하자는 마음이 생겨 노회찬재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노회찬 재단 박규님 선배와 함께 술을 한 잔하게 되어서 노의원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리운 마음도 좀 진정되고, 이제 내 마음에서도 그를 보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잘했다면서 등을 두드려주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 노동자와 민중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촌철살인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얻었던 진보정치인 노회찬이 너무 그립지만, 이제야 그의 마음과 결정을 존중하며 내 마음에서 그를 보내주게 되었다. 

노회찬의원의 꿈과 뜻을 이어가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고 노력하시는 노회찬재단 구성원 동지들께 감사드린다. 노의원님을 기리고 뜻을 이어가는 일에 미력하지만 함께 하고자 한다.

잘 가요 회찬아저씨.


-  이서용진 노무사 (공공운수노조법률원 - 법무법인 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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