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31호) 문화인 노회찬 - 빗자루 연주하는 회찬씨, 집회에서 첼로 연주해주세요
문화인 노회찬
빗자루 연주하는 회찬씨, 집회에서 첼로 연주해주세요
“노동자들에게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오늘 집회에서 노래해야 하는데 못 들어가고 있어요.”
노회찬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2007년 이랜드 노동자의 투쟁이 한창일 때였다. 경찰에 원천 봉쇄되어 들어가지 못하고 실랑이하던 순간 나타난 그는 원천봉쇄를 뚫기 위해 같이 싸웠다. 덕분에 무사히 노래할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떤 상황인지 그가 먼저 다가와 물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의 행동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었다. 국회의원 신분을 내세워 홀로 들어가 연설하고 사진 몇 장 찍어 보도자료를 내는 것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많이 그렇게 하니까. 그러나 그는 우리와 같이 들어가기 위해, 같이 싸웠고 같이 집회에 참석했다.
2011년에 그가 대한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을 때 걱정이 되어 찾아가서는 정작 내뱉은 말은 곱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끼니를 굶는다고 뭐가 변하나요? 그만 굶으시고 국회에서 제대로 싸워주세요.” 함께 하던 정당을 떠날 거라는 소문에 화난 마음과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뒤섞여 갈피를 못 잡고, 비난하는 어투로 툭 내뱉고 말았다. 그때가 그를 직접 만난 마지막 순간이었다.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꿀 거라 믿었던 그는 다른 자리로 떠났다.
참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이 개인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전히 참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버려진 것 같았는데 왜 그를 계속 믿었을까? 아마도 낮은 곳의 작은 목소리들이 어려울 때마다 몸소 함께 하는 그를 보면서 ‘같이 갈 줄 아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떠난 후에야 그의 ‘동행’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의 생전에 문화기획자로서 그와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첼로 연주하는 노회찬을 노동자 집회에 세우고 싶었다. “베토벤의 음악,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예술노동자에 의한 인류문화의 자산이다. 이것을 소수만이 향유하는 사회경제적 제도에 강한 거부감을 느낄 뿐이다. 비싸서 못 갈 뿐이지 부르주아만의 문화가 아니다.”라던 그라면 출연 제의에 흔쾌히 응하지 않았을까?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를 만들어 가는 여정에서 만난 그는 유독 예술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유쾌하고 절절하게 연설하는 노회찬도 좋지만, 음악으로 연대하는 노회찬은 싸움에 지친 이들에게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빗자루로 연주하던 노회찬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그는 떠났다. 살아남은 자는 그를 잃은 슬픔보다는 함께 꾸었던 꿈을 간직한 채 뚜벅뚜벅 다시 한 걸음씩 내디딜 것이다. 그가 먼발치에서라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그리움을 안고서.
- 민정연(꽃다지, 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