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38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이 없는 세상에서도 새벽 첫 차는 달립니다
문화인 노회찬
노회찬이 없는 세상에서도 새벽 첫 차는 달립니다
내가 노회찬 의원님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건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작가로 일하면서부터다. 물론 그 전부터 수 년간 의원님께 방송 인터뷰를 부탁드리곤 했지만 고정코너로 매주 의원님을 모신 건 <뉴스공장>이 처음이었다. 당시 코너의 가제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거대 양당에 가린 소수정당을 ‘배려’하자는 취지였지만 청취율이 고공행진 하는 프로그램에서 원내 교섭단체도 아닌 정의당에 매주 25분 남짓한 시간을 온전히 내어드린 건 그가 노회찬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방송 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노회찬 의원의 고정 코너. 청취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노회찬 의원님이 출연하니 코너명을 지어달라는 김어준 공장장의 얘기에 수 백 건의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노회찬의 돌려까기’, ‘자비는 없다. 노회찬의 노머시(No mercy)’ ‘노회찬의 빵야빵야’ 심지어 ‘노인과 정치’라는 코너명에 이르기까지... 수 백 만 명의 청취자들이 집단 지성을 모으기 시작했다. (방송 직후 “작가님, 우리 의원님 가뜩이나 노안(?)이신데 제발 ‘노인과 정치’는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박규님 비서관님의 다급한 문자 메시지에 스태프 전원이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마침내 라디오 역사 최초의 19금 코너명이 탄생했다.
“(김어준) 대표님만 나오면 코너 제목이 문자로 쇄도해요 오늘 새로 나온 것 중에 이런 게 있네요 ‘노르가즘’이라고 하하하하하“ ”(노회찬) 아침에 듣기에는 좀 그러하네요” “괜찮습니다. 노회찬의 노르가즘, 좀 야합니다만...“ (2017. 6.13)
침대(?) 대신 국회를 누비는 짜릿한 ‘노르가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뉴스공장> 최고의 코너다, 수요일이 기다려진다는 찬사도 뒤따랐다. 청취자들은 응원 문자와 정치후원금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회찬 의원을 추앙했다. 정치 현안을 꿰뚫는 날카로운 분석을 재치있는 비유로 전달하는 힘. 날 선 비판이 아닌 웃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는 따스함. 대중과의 소통이 생명인 방송작가에게 노회찬 의원님은 최고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의원님은 이런 내 마음을 미처 고백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깊고, 무겁고, 외로운 선택으로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TBS에서 <함께 꾸는 꿈, 노회찬>이라는 추모 다큐를 만들며 내가 미처 몰랐던 더 많은 노회찬을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를 통해 음악을 사랑했던 꼬마 노회찬,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청년 노회찬, 노동운동과 수배생활을 거치며 더 단단해진 인간 노회찬,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은 아내와의 결혼”이라고 말하는 로맨티스트 노회찬, 당선보다는 낙선이, 빛 보다는 그늘이 더 많았던 정치인 노회찬을 만나는 여정의 끝에서 나는 노회찬식 촌철살인이 나오게 된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유명하지만 그 전에 제가 현장에서 활동할 때에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문제 의식을 갖도록 설득하는 게 운동인데 사람들은 선입견. 편견.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정책을 들을 생각도 안하죠. MBC <백분토론>에 나가도 국회의원이 아니니까, 국회의원 된 후에는 소수 정당이니까. 한나라당이 두 번 말할 때 우리는 한번도 말을 못하죠. 게다가 우리 얘기는 현실을 고쳐내려는거니까 설명이 필요하고 복잡해요 그래서 나는 말을 짧게 줄이는 훈련을 했어요. 일종의 생존 법칙이죠.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학도 못 다니고 평생 혹은 1년에 읽은 책이 한두 권인 경우가 더 많죠.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말, 엄청난 지식이 없어도 이해되는 말이 필요해요. 학벌, 계급, 이런 걸로 지지를 받는 게 아니라 생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니까요. (2014.01.27. 마들연구소)”
‘노르가즘’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정치인 노회찬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즉석에서 촌철살인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전달할 메시지를 어떻게 해야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지, 현장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온 사람이었다. 그의 언어가 특별했던 건, 그의 말 속에 변화를 꿈꾸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이제 만 4년. 노회찬이 없는 세상에서도 새벽 첫 차는 달려간다.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투명인간으로 이름 없이 살아온 이들을 위한 정치.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세상. 노회찬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일은 여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 이윤정 작가 (TBS 시민협력팀, 前 <김어준의 뉴스공장> 작가, 前 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