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문화인 노회찬

정태인, 노회찬 그리고 이재영

62세를 일기로 경제학자 정태인이 지난 주 영면에 들었다. 그래도 10년 정도는 더 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아디오스 정태인!

나의 30대, 그때는 이재영과 노회찬 그리고 정태인이 얽혀 있던 복잡다난하던 시절이었다. 노회찬과 정태인의 관계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나와 이재영은 친구로 지냈고, 이재영과 노회찬은 길고 긴 인민노련 시절 이후로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서 그냥 서로 친구처럼 지냈다. 학교 관계도 얘기한 적이 거의 없고, 나이도 정확하게 잘 몰랐다. 정태인과는 선배라고도 불렀고, 형이라고도 불렀다. 내가 이재영과 노회찬 등 그 그룹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선배’라는 말을 하기도, 듣기도 싫어하는 나의 더러운 성격 때문일 것이다. 선배와 학번이 일본 풍습이라는 것을 안 뒤로는, 그렇게 앉아서 서로 족보부터 따지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노회찬은 물론이고 그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게 없었다.

이재영이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을 그만두고 난 뒤, 그의 월급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이광호와 이름만 있던 출판사를 살려내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 출판사에서 낸 책이 <88만원 세대>였다. 책은 다행히 잘 팔렸고, 이재영이 레디앙 기자이자 기획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의 월급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출판사에서 선계약을 하면서 원고를 기다리던 저자가 바로 정태인이었다. 아주 작은 성공인데, 그 성공을 뒤에서 기뻐하던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정태인의 <딸과 함께 쓰는 경제학(가칭)>은 준비하는 동안에 딸이 이미 커버려서 결국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다. 그 시절에 와인바에 이재영과 정태인이 둘이 간 적이 있었는데, 분위기 영 아니라고 이재영이 ‘엘레꽝스’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노회찬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을 때, 나는 그 선거에서 후원회장을 맡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노회찬에게 좀 더 많은 조언을 하게 되었고, 정태인은 심상정에게 더 많은 조언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와 정태인이 정치 자문만 하였던 것은 아니다. 한미 FTA가 한참이던 시절, 정태인은 정말로 시골 농가까지 전국을 빠짐없이 돌아다녔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정신 없이 돌아다녔었다. 당시 ‘꾸리에’에서 <진보의 재탄생_논객들, 노회찬에게 묻다>라는 책을 냈는데 홍세화, 김어준, 진중권, 변영주, 홍기빈, 한윤형, 김정진 등과 논객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서, 그 시절에 그렇게 자주 보던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갔다. 2012년에 이재영이 암으로 먼저 떠났고, 그 후에 노회찬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태인이 지난 주에 떠났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까지, 그 뜨거웠던 한 시대가 그렇게 지나간 것 같다. 그 중심에 노회찬이 있었다. 가끔 새벽에 잠을 설치고 일어나면 노회찬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노회찬이 없는 세상을 사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 그만큼 강렬한 기억이다.

보수 쪽 친구들은 그렇게 일찍 떠난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 진보 쪽은 남은 사람을 손에 꼽을 것 같다. 나는 언젠가 참고 버티면 노회찬이 대통령 되는 것을 살아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살았는데, 이제 그런 꿈을 다시 갖기가 어렵게 되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회찬과 정태인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정치인, 활동가, 변호사, 경제학자 그리고 많은 문화예술가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면 같이 모여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자본주의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려던 시점이었다. 그 중심에 노회찬이 있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얼마나 활동을 더 할지 모르겠지만, 노회찬 그리고 그 동료들과 나누었던 생각을 조금은 더 전개시켜 보고는 싶다. 내가 아직 글을 쓰는 이유다. 


- 우석훈 (‘88만원 세대’의 저자,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