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43호) 특집 <월간 노회찬> 시즌1 돌아보기 - 강연자, 수강생 후기
특집 <월간 노회찬> 시즌1 돌아보기 - 강연자, 수강생 후기
노회찬의 '진보'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억센 풀로서,
젊은 친구들에게 남기를 바라며
- 박찬수 한겨레신문 대기자 (1회 강연자)
지난 4월20일 노회찬재단으로부터 <월간 노회찬>이 첫 강사로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뜻 수락한 것은, 지난해 쓴 책 <진보를 찾습니다>의 상당 부분이 고 노회찬 대표의 삶과 실천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강의 내용은 <진보를 찾습니다>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그게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나 뿐 아니라 강연에 오신 분들 모두 별로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치열했던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은 절망의 수렁에 깊이 빠진 채 언제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던 시절이다. 수백만 개 광장의 촛불이 켜진 지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보수 포퓰리스트 정치인에 내줬다는 충격은, 더구나 진보 세력이 반동의 흐름에 제대로 대응 한번 해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패배했다는 허탈함은 컸다.
‘진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미래를 가리키지 못하고, 낡고 식상하고 과거에 묶여 있는 시대착오적인 의미로 회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 역시 젊은 후배 기자들과 대화할 때 꼰대처럼 비치는 걸 피하려 ‘진보’라는 단어는 가급적 피하려 애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란 이런 것이고 여전히 의미 있는 가치라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20여년 전, 시대를 앞서갔던 노회찬의 진보를 다시 꺼내 들어 설명하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때 노회찬이 말했던 ‘진보’의 생생함과 푸릇푸릇함을 다시 되살려서 “본래 진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날 강연장에 오신 20명 가까운 회원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대부분 50대 또는 60대 이상의 나이든 분들이었는데, 20대 대학생도 서너명 눈에 띄었다. 아마 학교에서 수업 과제로 진보와 보수와 관해서, 또는 진보란 무엇인가에 관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부여받은 듯했다. 그 친구들에게 <진보를 찾습니다> 책에 서명을 해주면서, 이 책에 담긴 두 주요 정치인, 노무현과 노회찬의 진보 고민이 낡아서 말라비틀어진 꽃이 아니라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억센 풀로 젊은 친구들에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강연의 자리를 마련해준 노회찬 재단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당신의 삶을 쓰며, 당신의 삶과 연대하며 (11월 강연 후기)
- 현장 참석자 채현기 회원님
2017년 가을, 저는 커서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처음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고, 아직은 완전치 못하지만 여전히 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고 있는 습작생입니다.
시간을 지금 2022년으로 돌려 지난주 수요일, 저는 권지현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어떻게 방송작가를 지망하게 되셨나요?” 저의 질문에 작가님은 이런 답을 주셨습니다. 본인이 라디오키드였기에,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로 했다고. 그 대답을 들으며 5년 전 이맘때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처음 쓰는 것을 마음 먹었을 땐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아무 걱정 없이 무엇이든 다 쓸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 저는 작가님이 지난 23년 동안 걸어온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현실의 벽에 여러번 부딪히면서도 결국 다시 우리네 삶의 ’짜릿함‘을 쓰기 위해 치열한 현장으로 돌아오고, 전국의 여러 동지들과 연대하기를 결심한 작가님의 지난 날들이 제 머릿 속에 저절로 그려졌습니다. 동시에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쓰기 위해서는 세상과 맞서 싸울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던 자리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때마다 글을 썼던 나는 지금 사람들이 보고 듣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으로 밥을 먹고 있다. 이제는 그 밥으로 힘을 얻어 세상을 향해 글을 쓴다. 내가 이제 ‘눈물’이 아닌 ‘펜’으로 삶을 다시 쓰고 있다.“ - 작가님의 저서인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에 등장하는 한 문단입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나고 자란 작가님을, 그냥 평범한 작가도 아닌 방송작가로서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펜’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펜의 힘에서 세상을 쓸 수 있는 힘이 나오고, 누군가와 연대할 수 있는 힘이 나오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힘들고 지쳐도, 죽을 듯이 눈물이 나도, 다 때려치고 싶단 생각이 든대도, 이 모두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펜의 힘…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노회찬 후보는 방송에 출연해 유권자들에게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권지현 작가님 역시도 이번 강연을 통해 “처우에 대한 질문보다 일에 대한 본질의 질문이 먼저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이라는 바람을 남겼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두 사람이 남긴 말의 본질은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일하는 사람이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세상, 일하는 사람이 밝은 내일을 믿으며 잠에 들 수 있는 세상,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삶에 쓰여지기를 상상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이 아닐까요?
강연에서 작가님은 이 일을 하는 자신을 으쓱하게 만드는 것들에 이런 것들이 있다며 청자들께 소개해주셨습니다.
응시하기, 말하기, 딱 한 발 나아가기, 기부하기.
저도 작가님처럼 우리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며, 한 발 더 나아가기를 즐기는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