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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44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 기억법

재단활동 2023. 01. 16





문화인 노회찬

노회찬 기억법

 

만일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런 생각을 왜? 지금이 딱 좋아. 지난날을 떠올리는 건 그저 추억일 뿐, 거기에 후회나 아쉬움 같은 감정을 보태지 않는 편이다. 가정법의 인생을 머리와 입으로 꾸려본 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내게 ‘만일 그가 있었더라면’하는 참으로 부질없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노회찬이다. 누군가 떠난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게 세상사이고 그렇게 떠난 사람이 잊히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내 세상에서만큼 그는 여전히 대체불가 정치인, 대체불가 인터뷰이이다.

회피하는 질문 하나 없었고 우물쭈물 막히는 현안이 없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답이 있었고 그 답은 어려운 진보 이론이나 정치 철학이 아닌 그저 상식과 도리에 걸맞게 풀어져 듣는 나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토론 논객으로서 보여준 탄탄하고 핵심을 찌르는 논리나 토론 맞상대마저 무장해제하게 만든 재치와 유머야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랬기에 인터뷰나 토론이 필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내가 부르고 싶은 인물 리스트 1순위에는 언제나 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죽하면 부를 정치인이 노회찬밖에 없느냐는 말까지 들었을까. 실제 나한테는 그런 면이 없지 않았으니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날 인터뷰도 그랬다.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내고 실제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받은 특수활동비를 도로 반납하는 걸로 행동하며 주목을 받고 있던 터라 그 말고 다른 대안도 없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드루킹 관련 의혹에 대한 질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역시 피하지 않고 답변하기에 그럼 그렇지 하는 편안함 마음으로 그날도 신고 온 낡은 구두를 농담 삼아 인사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헤어진 그날 인터뷰가 그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될 줄이야.




ⓒ JTBC


열흘도 지나지 않은 날 아침, 그는 떠나고 나에겐 자책이 남았다. 오죽하면.... 목숨을 저렇게 내려놓을 만큼 그를 괴롭게 한 것은 무엇일까. ‘앞뒤가 똑같은 사람,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 손석희 앵커가 정의하는 노회찬이다. 그런 그였기에 생을 저토록 마감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노회찬 같지 않았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게 된 것이 부끄러워서.. 그를 믿고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렇지 않아도 무거웠을 그의 어깨에 그날 마지막 인터뷰는 분명 또 하나의 짐으로 업혀졌을 것이다. 질문을 받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이고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 또한 언론의 존재 의미여서 서로가 그저 할 일을 한 것이지만 그것이 혹여나 생과 사를 가르는 단초가 된 것은 아닌지. 그저 인터뷰 초안을 준비하는 작가에 불과한 내 마음이 이런데 얼굴을 맞대고 직접 질문을 던진 앵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 눈치 보며 조마조마하게 몇 날 며칠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2019년 4월 초, 손석희 앵커는 그날의 브리핑으로 동갑내기 노회찬과 작별 인사를 했다. 앵커는 스튜디오 안에서 목이 메어 마무리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방송 사고를 내는 사이, 나는 밖에서 원 없이 울고 그동안 가슴 한편 움켜잡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있었더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부질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나는 이 질문을 앞으로도 하게 될 것 같다. 다만 달라지는 건, 그가 있었더라면 했을 답안지의 빈칸을 스스로 채워보는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노회찬이라는 사람의 정신이 내 마음에 배어 있어서 그토록 미련하고도 부질없을 질문을 털어 버리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그것이 맞는다면 나는 이제야 비로소 노회찬 기억법을 찾은 것일 수도 있겠다.


- 박창섭 (JTBC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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