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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48호)] 문화인 노회찬 - 지금 ‘노회찬 정신’은 무엇일까?

재단활동 2023. 05. 15




문화인 노회찬

지금 ‘노회찬 정신’은 무엇일까?

 

노회찬 대표와 나는 민주노동당 사무총장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진보신당 시절에는 대표와 집행위원장, 부대표의 관계로 함께 일을 했다. 노회찬은 한국 진보정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시기 전체에서 그가 단독으로 대표직을 맡았던 것은 2009년~2010년의 시기밖에 없다. 물론 공동대표는 여러 차례 맡았다.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기록으로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이는 그가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진보 국회의원으로서 진보정치를 보다 대중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 지도자 노회찬의 리더십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뜻이다. 1년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표로서의 노회찬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일했던 경험을 가졌던 사람이기에 그게 더더욱 아쉽다. 

한국형 사회주의, 한국형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념적 가치를 일관되게 견지하였던, 그러나 관념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유연함과 과감함을 함께 가졌던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그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부질없은 질문을 가끔 던지곤 한다.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 보면, 몇 가지 강렬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는 “진보정치는 더 대중적이고 더 유연해야 한다” “정치인의 얼굴과 이미지는 자기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비친 얼굴과 이미지에 의해 규정된다”고 늘 말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진보정치의 이념과 가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더 천착하고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한국적 사회민주주의’는 그의 다양한 실천적 행보와 판단들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였다. 강경 좌파로 자처했던 나보다 훨씬 더 깊고 넓게 진보정당의 이념과 가치를 탐색하던 그와의 대화는 그래서 의외였지만 강렬하고 신선한 자극으로 남아 있다. 

또 문화적 소양이 풍부하고 다방면에 박학다식했던, 음악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했던 그는 진보정당이 정치적 강경파, 근본주의자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문화적으로 지적으로 풍요롭고 다채로운 집단으로 국민들에게 비치길 바랐다. 사회주의나 진보는 과거와 무조건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좋은 점을 이어받고 계승하면서 부정적 측면은 발전적으로 극복해야 하고  그래서 진보는 정신적 실천적으로 풍부하고 풍요로워야 한다는 걸 ‘문화인’ 노회찬은 그의 삶으로 보여줬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떠난 좋은 사람들에 대해, 그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과장하곤 한다. 애정의 기억들은 때로는 기억들의 과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과장은 박제화로 나타난다. 나는 노회찬을 박제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의 노회찬이 아니라, 오늘과 미래의 노회찬으로 끊임없이 소환하고 현재화했으면 한다. 한국형 사회민주주의를 꿈꾸고 지향했던 노회찬의 정신은 지금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 풍요롭고 풍부한 진보의 정신세계와 정치문화를 지향했던 그라면 왜소하고 궁핍해진 지금의 진보에게 어떤 화두를 던졌을 것인지.

노회찬보다 노회찬을 더 사랑하고 좋아했던, 하지만 노회찬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난 민주노동당 조직실장이었고 노회찬의 보좌관이었던 오재영은 나에게 늘 말했었다. 노회찬을 앞세우고 그를 국민적 정치인으로 만드는 것이 진보정치 성장 전략이라고. 하지만 이제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노회찬의 정신, 생각을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해야 한다. 


- 정종권 (레디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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