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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48호)] <후마니타스 특강> 수강생 소감문 (김송, 류채영)

재단활동 2023. 05. 15




* 노회찬재단은 경희대학교와 협력하여 지난 2023년 1학기 부터 <후마니타스 특강: 6411의 목소리와 노동 존중 사회>란 이름의 교양수업을 개설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래 두 학생의 글은 수업 전반부에 대한 에세이 입니다.



모두에게 이익이 없는 법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김송 (자율전공학부)


후마니타스 특강의 첫주차 주제였던 타투이스트 도이의 강연을 듣고 헌법재판소 2022헌바3 결정문을 찾아 읽어보았다. 미래에 법조인이 될 것을 꿈꾸며 학부에서 여러 법 수업을 수강하고 있던 터라, 타투이스트 도이의 강연은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소 우리나라에서만 타투가 의료행위로 규정되어 있어 문제가 되고있다는 정도만 알고있었지, 해당 법률 때문에 실제로 타투이스트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그에 따라 비논리적인 입법, 사법, 행정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타투를 받은 손님들의 불법행위 신고협박으로 인한 타투이스트들의 자살, 의료법에 따르면 명백한 불법행위이지만 사업자등록이 가능한 비논리적 행정 등 모두 내가 커서 몸담고 싶은 21세기의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심판대상조항 중 '의료행위' 부분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고, 심판대상조항은 청구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2022헌바3 결정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에서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제 27조 제1항의 합헌 결정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의료인의 문신시술은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이므로 의료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명확성원칙에 위반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국의 입법례처럼 별도의 문신시술 자격제도를 도입하는 대안은 입법부 재량사안에 속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의료인과 동일한 정도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신시술인의 자격과 그에 관련한 규제를 마련하는 완전히 새로운 제도의 형성과 운영은 상당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타투는 ‘초순경 바늘로 살갗을 찔러서 색소를 투입하여 피부에 흔적을 남기는 시술’이라고 판결문에 묘사된 바처럼 우리 피부에 물리적 상처를 수반하게 하는 행위이니 비의료인의 행위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취지인 것이다. 타투가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임에는 인정하는 바이나, 별도의 전문자격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의료인의 행위와 동일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고 새로운 사회경제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사안이니 입법부의 재량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은 입법부에 책임 떠넘기기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청구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이유가 입법부의 입법부작위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입법부가 알아서 할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회피성 판결이다. 

법은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해 그 필요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보수적이만 유동적어야 한다는 어쩌면 모순적인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모두에게 실익이 없는 법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기에, 법관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두 성질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어려운 일을 해내어 사회에 실용적인 대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별도의 문신시술자 자격제도를 도입해 국민의 공중위생에도 부합하고 타투이스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이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는 법관들이 오히려 위헌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투이스트 도이와 함께 연대하여 끝까지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의료법 제 27조 제1항은 언젠가 헌법불합치 또는 위헌 결정이 날것이라고 생각한다. 2022헌 바3결정에서도 재판관 4명은  별도의 문신시술자의 자격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고,해당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있어 위헌이라는 반대의견을 냈다. 의사들에게만 이익이 존재하는 이 법은 결국 모두에게 외면 받게 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공생 : ‘플랫폼 노동’ 강연을 듣고
류채영 (미디어학과)


나는 소리에 민감한 편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큰 소리가 터져 나오면 남들보다 두세 배 놀라곤 한다. 특히나 괴로운 건 화려한 배기음인데, 누군가는 이 소리를 즐겨 돈을 내어 튜닝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이 소리를 듣는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며 얘기할 답은 ‘오토바이’일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오토바이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현재는 ‘오토바이’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배달이지만, 과거에는 중국집을 제외하곤 배달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었다.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발견한다면 이들을 라이더 혹은 폭주족이라고 가볍게명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로 위의 무법자, 폭주족. 우리에게 기억되는 오토바이의 첫인상이다. 

일터에서는 빨리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우대받는다. 도로 위에서는 어떨까. 많은 양의 배달을 빨리한다면 보통 ‘신속한 배달원’이라는 칭호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속도를 낸 배달원’이라는 생각이 따를 것이다. 어느새 자리 잡아 있는 오토바이에 대한 편견이 해당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을 혐오하게 만든다. 단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 할뿐더러 달리면서도 휴대폰을 들여다봐야 하며 교통 수칙을 지킨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것 자체가 큰 딜레마다. 안전하게 오래 일을 하고 싶어도 적은 벌이라는 결과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몸을 던져, 속도를 올려 열심히 일을 수행해도 ai의 배달비 장난으로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하는 날이 많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농락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가 인수합병 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불안감을 낳았다. 과거에는 독점이 하나의 큰 문제로 받아들여졌는데 현재는 능력으로 과시되고 있다. 사회적 문제를 견인하는 것은 여전한데도,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보다 대단하다고 여기는 눈길이 증가하고 있다. 독점하는 기업은 암묵적으로 법칙을 만들 수 있다. 배민이 정하는 배달비가 이 시대의 규칙 내에서의 가치인 것이다. 직접 배달을 해보지도 않은 기업이, 그들의 가치를 결정하고 있다. 소비자의 편의를 앞세우며,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 배달비의 상정을 올바르게 보고 이 가격을 내는 데 순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고객의 마음이 정직하게 전해질 수 있을까. 고객의 니즈와 배달원의 니즈, 식당 사장님의 니즈, 그 모든 게 충족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배달료를 아끼고자 다양한 식당의 배달비를 비교하는 게 습관이 됐다. 저렴한 배달비, 괜찮은 음식 가격, 높은 별점의 조합이면 주문을 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은 쉽게 그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도 값싸게 서비스를 누리고자 한다. 저렴한 배달비의 혜택만 보고, 실상은 보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 사실,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보지 않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의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이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배제할 요소는 넘쳐난다. 산재 1위 기업 배민, 도로 위에서 순간의 실수로 목숨이 좌지우지된다. 다치면서 몸소 배우는 것이 언제까지 유효할까. 죽음 앞에서 고인에 대한 명복보다 잘잘못을 따지는 지금의 우리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강연이었다. 업장이 아닌 곳이기 때문에, 특히나 그곳이 공공의 소유인 도로 위이기 때문에. 라이더들은 수많은 것을 감내해 내야한다. 단순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이미 위험한데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으려면 더 위험해져야 한다. 죽음과 가까운 노동을 하는 사람들, 우리의 일이 아니라 방관하는 나날들. 노동과 일을 분리하고 노동을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차별을 만들고 유지시킨다. 정당한 대가에 대한 동의와 높은 인식을 가지고 시민 사회를 육성해야 한다. 한국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힘든 노동에 정당한 대가보다 높은 지식 기술에 높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같이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숨 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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