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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49호)] 후원회원 이야기 - 노동은 신성하다

재단활동 2023. 06. 16




후원회원 이야기

노동은 신성하다

 

교사로 30년 넘게 근무하다 퇴직한지 2년이 넘어간다.

교사의 노동 현장은 열악하여 20대 때는 전교조 교사로 활동하다 해직까지 되었다. 내가 바라는것은 단 한가지였다. 내 아이들과 비가 새지 않는 교실에서 또롱한 눈망울을 마주하며 토론수업을 하고 싶었다.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생각에서 나온 말로 수업을 하고 싶었다. 어른이 써 놓은 이해 못하는 글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 리듬에 맞는 책으로 함께 나누는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열악하였다. 교사는 잡무에 시달리고 교권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학교폭력 위원회니 학생 자치니 하면서 교사의 업무만 늘려 놓았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 싸운 친구와 화해하며 나누는 시간들의 힘으로 사회생활을 배운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따져 손해배상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은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대화로 삶을 풀어 나갈 시간이 필요하다. 왜 어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위원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스스로 일어난 일을 처리할 시간마저 주지 않는가?

또한 학생 자치라는 미명하에 모임은 꾸려 지지만 그걸 진행해 가는 교사의 미숙함으로 자치의 참 의미가 훼손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뭔가 하나의 제도를 정착시키려면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들어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그리고 교사사회부터 자치로 운영이 되어져야한다. 교무회의부터 교사들의 토론을 거쳐 회의를 진행해 보는 경험이 있어야 아이들에게도 자치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교무회의도 의결기구가 아니다. 일방적인 지시전달식이다.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이 회의 사회를 보고 일사천리로 끝낸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자치를 알려줄 수 있을까? 자치교육을 교사부터 철저하게 시켜야한다..하지만 제도를 만드는 분들은 교육을 모른다. 그저 탁상공론으로 일제 지시 형으로 만들어져 내려온 새로운 제도를 교사는 불평불만 없이 해야만 한다. 나처럼 뭔가 모순이 있다 이상하다 여겨 의견을 내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며 질타 당하기 일쑤였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아이는 실수 하면서 또 다른 배움을 얻게 되므로 실수하는 걸 격려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현장은 어떤가? 폭력 위원회를 열어 시시비비만 가린다. 과연 이런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한참 의문이 든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신성한 교육자라는 허울 좋은 명목 하에 스승이라고  추켜세운다. 이런 나약하고 주체성을 상실한 교육 현장을 바꿔 나가는 건 교사도 당당하게 노동자라고 외쳐야 한다.

노동이 왜 천시 받아야 하는가 ? 33년 가까운 교직에서 명예퇴직 후 새벽에 눈을 뜨면 청소를 해야 하고 밭에 나가 풀을 뽑아야 한다. 내가 먹을 밥상을 스스로 준비하고 제철 음식을 효소로 만들거나 말려서 묵나물로 만들려면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 한다. 교사가 아이를 잘 가르치려면 교재 연구를 위해 운동장에 나가 수업자료준비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또한 아이들 보내고 난 후에  수업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다음날 쓸 수업자료를 만들려면 또 발품을 팔아야 한다. 초등교사는 중등교사보다 더 많은 노동의 양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전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나마 교과 선생님이라는 제도가 생겨나서 몇 과목은 도와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담임교사의 몫이다. 그런데 교사가 노동자가 아닌가?

언제부터 노동을 이렇게 천시했는가? 우리 선조들은 노동의 신성함을 알아 노동요까지 만들었다. 세상에 노동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내가 움직여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자급자족하는 삶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이다. 내가 존경 했던 노회찬 의원님은  노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래서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실천하는 노동자의 다정한 친구였다.

당당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언제나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노동의 소중함을 인정받게 해주려 노력했던 소신 있는 분이셨다. 그래서 난 그분의 뜻을 기리고자  실 위에 은은하게 미소 짓는 의원님의 초상화를 선물해 가시는 길을 따뜻하게 배웅해 드리고 싶었다. 또한 사모님께는 황망하게 떠나간 남편을 잃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 ‘이승’ 작가에게 필자가 의뢰해서 구성한 노회찬의 비단실 초상화 (노회찬재단 소장)


 “언제나 그리운 노회찬 의원님! 당신 사시는 나라에서도 이 세상이 노동자들의 천국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고 계시겠지요? 이젠 편히 쉬셔요. 고단했던 한생 내려놓고 따뜻한 봄날처럼 나른한 오후의 낮잠도 즐기고 좋아하는 첼로 연주도 하면서 그냥 편히 쉬셨으면 해요. 이젠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노동이 대접받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또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지금도 노회찬의원님이 가시던 그 날 잊지 못한다. 하루 빨리 그분의 뜻을 이어받아 내 조국 대한민국이 노동자의 삶의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그런 미래가 내일이라도 바로 펼쳐지길 기원해 본다.   


- 조길남 (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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