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57호)] 후원회원 이야기 "노회찬 의원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후원회원 이야기
노회찬 의원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처음 노회찬 의원을 알게 된 건 배우자를 통해서였다.
나는 인기 많고 유명하지만 실상 탐욕적이고 천박했던 인물들의 영향 아래 자라 결과로 나타나는 성공과 성취를 지향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나와는 달리 배우자는 어린 시절부터 노회찬 의원에게 큰 울림을 받아 과정을 즐기고 결과가 어떻든 좌절하지 않은 채 노력을 계속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나를 교육하고 영향을 주었던 어른들과 같은 시절을 살고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노회찬 의원.
그러나 너무나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아 온 노회찬 의원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고 내가 가진, 그리고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던 나의 실체들도 샅샅이 파 해쳐 돌아보게 되었다.
단지 힘들게 이룬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시대에 순응한 모범생들은 그것을 사회적 성공과 부의 축적, 권력으로 휘두르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러고는 누구보다 당당해 하는 것은 물론 이를 용납해 주는 사회적, 문화적 안전망도 탄탄하다. 그 당연하고 쉬운 선택을 하지 않은 노회찬 의원의 행보도, 같은 궤도를 향하려 노력하는 나의 배우자도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섦이었고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유신정권 시절 대항하는 투쟁의 삶보다는 개인의 부와 안위를 위한 길만 걸었던 집권층들에게 노회찬 의원은 누구보다 위협적이었을 것이며, 무엇보다 본인들을 초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회찬 의원을 비롯한 당시 행동했던 양심들을 반골의 기인으로 폄하하며 본인들의 수치심으로부터 도피한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의 그런 세뇌 속에 자란 충실한 자녀 세대였다.
엄혹한 시절에 남다른 길을 걸었을 테니 노회찬 의원은 비장하고 거칠고 날카롭기만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유쾌하면서 어질고 현명한 정치인이었고, 깊이 있고 따뜻했으며, 무엇보다 소소한 멋과 맛과 미를 즐기며 향유하는 참어른이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당연한 권리가 노회찬 의원의 끊임없는 투쟁이 만들어 낸 성과임을 찬찬히 알아갔고, 내가 누렸던 경제적 안정은 내 주변 그 어떤 어른도 말해주지 않은 수많은 노동권과 인권 유린을 통한 착취의 산물임을 깨달았다.
뒤늦은 성찰에 따른 충격과 배신감 속에서 내 삶의 일부를 도려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혼란이 커져만 갔다.
그러한 혼돈 속 나에게 더 큰 분노와 좌절의 순간에도 늘 여유, 해학, 다정함을 보여주셨던 노회찬 의원은 그 어떤 정신과 진료와 처방약보다 따뜻한 위로와 안정을 주었다.
몇 해 전 그날 배우자와 함께 노회찬 의원의 분향소로 향하던 비통했던 그 길에 지하철에서부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한 무리의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았다. 꽤 길었던 그 길에 그들과 계속 동선이 겹쳐 조금 의아했다.
길이 끝날 때쯤 그들은 역시나 우리와 같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조문을 하던 중 이내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하더니 정말 서럽게 엉엉엉 우는 것을 보았다. 놀라웠다. 노회찬 의원을 잃고 그의 삶을 기리며 온몸으로 우는 교복 입은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보다 훨씬 긴 세월을 살아온 나는 뒤늦게야 그를 알고 후회와 자기연민 속에 방황하고 있었는데.
나도 저들과 같이 어린 시절 노회찬 의원을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많은 이들이 탐내는 걸 가졌지만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들, 그 속에서 안락하게 둘러싸여 있었던 나에게 향하는 그 큰 실망과 분노와 이질감이 덜했을까?
노회찬 의원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을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이 세상 모든 약자와 그들이 처한 부당함에 맞서, 따뜻함과 다정함으로 대항하고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도 해학과 유쾌함을 품고 다시 일어섰던 노회찬 의원의 즐기는 삶을.
너무나 비통한 가운데 반가웠고, 고마웠고, 희망을 보았다. 그렇게 멀리서 소극적으로 응원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부부가 함께 노회찬 재단의 후원자가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노회찬 의원의 정신이 계속 계승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부부 또한 그 일원으로 항상 노회찬 재단과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덧. 노회찬재단을 통해 알게 된 소소한 즐거움이 있어 함께 공유드리고 싶다. “아는어부” 정기 구독. 한달에 한번 우리바다에서 수확한 제철 해산물들을 바로 받을 수 있는데 근래 우리 부부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노회찬 의원의 친구이자 오랜 후원자인 ‘싱싱스’에서 정성스레 보내주시는 해산물이 오는 날이면 노회찬 의원이 즐기셨던 것처럼 술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낸다. 아직 경험 못해보셨다면 이번 기회에 강력히 추천!
- 오새라 (재단 후원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