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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소식지(5호) 1주기를 맞아 쓴 비문 글씨에 대한 이야기 (강병인)

재단활동 2019. 10. 02







고 노회찬의원님 1주기를 맞아 쓴 비문 글씨를 이야기 하다
(강병인, 글씨예술가)

 

붓을 사용하여 글씨를 쓰는 서예는 빛깔이 없으면서도 그림이 가지는 색채감을 느끼게 하고 소리가 없으면서도 음악적인 리듬이 있어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마음을 맑게 한다. 서예는 기본적으로 글씨를 다루지만 그 글씨 안에는 먼저 법(法)이 있고 예(藝)가 있으면서 동시에 도(道)를 요구한다. 법과 도, 예는 다르지만 하나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1786~1856년)이 쓴 ‘침계梣溪’라는 글씨는 조선 말기의 문신인 침계 윤정현(1793~1874)의 부탁을 받았지만 그에게 맞는 글씨의 본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 30년 만에 쓴 글씨이다. 대상의 본질을 꿰뚫고 철저한 분석을 통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추사의 예술적 고뇌가 얼마나 컸는지 드러나는 작품이다.

필자 역시 고 노회찬 의원님의 1주기를 맞아 비문에 새길 글씨를 부탁받고 많은 고심을 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지만 직접 뵙고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한 적이 없으니 더더욱 글씨를 쓴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되었다. 그렇지만 오랜 동안 노회찬의원님의 촌철살인 같은 말씀에서 삶의 기운을 얻고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이 시대의 본이 되는 분이신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고 있기에 그 분에게 맞는 글씨를 써 보자는 욕심 또한 생겼다.

필자가 지향하는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라피, 즉 현대적인 서예의 하나인 멋글씨는 자신의 서풍만으로 글씨를 쓰지 않고, 글의 뜻과 소리 등 대상을 치밀하게 분석한 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글씨를 쓴다는 데 의의가 크다 하겠다.


지도자로서의 지혜, 정의로움, 무엇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꽃피우려는 그 큰 의지 

우선 노회찬 의원님의 삶과 말씀들 그리고 의정활동 등에서 부드러움, 여유와 유머, 지도자로서의 지혜, 정의로움, 무엇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꽃피우려는 의지 등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글씨에 함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았던 노의원님의 말씀은 팍팍한 삶에 지친 서민들의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고자 사용했으며,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분명히 알리고 각인시키기 위해서이고 이는 바로 지도자로서의 지혜이다. 그래서 글씨에는 ‘지혜로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꽃피우려는 그 큰 의지’를 담아 보고자 했다.

한글 제자원리는 초성은 하늘이고 종성은 땅이며 중성은 사람의 구조로 되어있고, 이는 다시 나눌 수 있으면서 모아쓰는 매우 입체적인 문자이다. 따라서 ‘노회찬’의 세 글자를 해체해 보면 ㄴㅗ ㅎㅗㅣ ㅊㅏㄴ이다. 초성 자음 ㄴ은 세록 획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자음 ㄴ은 가로획으로 끝나는 구조이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ㅎㅊ은 자음 중 유일하게 첫 획이 가로 또는 세로로 표기할 수 있어서 매우 역동적이다. 모음은 ㅗㅗㅣㅏ로 구성되어 있는데, 변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살려낼 수 있다. 이러한 글자의 구조와 획의 방향, 그리고 공간을 미리 살피는 것은 글씨를 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글씨를 써 나갔지만 머릿속에 그려진 형태가 한 번에 나오질 않았다.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며 써 나갔다. ‘노’에서는 부드러움과 유머, ‘회’의 초성 ‘ㅎ’에서 첫 획을 삐쳐 올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지혜, 중성 ㅣ에서는 용기, ‘찬’의 초성 ‘ㅊ’의 첫 획 역시 역동성 있게 표현한 것은 행동하는 양심으로써 노회찬을 의미하고 ‘ㅏ’자의 가로획을 점으로 표현하고 종성 ‘ㄴ’으로 연결하여 뻗어나가게 한 것은 평등한 사회를 꽃피우려 했던 노의원님의 굳은 의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완성된 글씨는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정의롭고 지혜로운 지도자, 그리고 평등한 사회를 꽃피우려 했던 노회찬의원님의 삶’을 오롯이 담고자 했다.





그리고 노회찬재단측에 이 글씨를 보여주었을 때 노회찬의원님의 평소 사인글씨를 보내 왔다. 너무도 닮아 있어 놀라웠다는 글과 함께 말이다. 사실 필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웠다. 수없이 썼던 글씨 중에는 보다 더 닮은 글씨도 있었다.

사실 이렇게 구구절절 글씨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한다는 것은 부끄럽다. 그렇지만 말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기에 긴 설명글을 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