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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민들레(9호) 음식天國 노회찬 (5)고흥맛집

재단활동 2020.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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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홍어와 임자도 민어, 영광굴비와 강진 토하젓, 벌교 꼬막과 목포 세발낙지… 이름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 이런 다양한 계절 음식을 우리는 남도음식이라고 한다. 더 정확히는 전라남도 향토 음식. 필자는 고향이 다르지만 앞에서 열거한 모든 음식(+알파까지)를 사랑한다. 홍어를 처음 먹은 것은 27살 때, 고대하던 목포 세발낙지의 현지 체험식을 거행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어느 날이었지만 기분은 늘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듯하다. 

남도 한정식이 서울에서 대중화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대중 정권의 등장을 꼽는다. 정치적으로 어느정도 지역균형이 이뤄지기 시작하고 경제·사회적으로 수요층이 넓어지면서 맛과 규모를 갖춘 좋은 전라도음식점이 성업을 이루기 시작했던 것 같다. 노무현정부 시절, 개인적으로 여행을 간 경상북도 문경의 한 한정식집에서 메인 디쉬로 홍어삼합이 나오는 것을 보고 감회에 젖은 적도 있었다. 아무튼 정치의 민주화가 음식취향의 자유화를 선도했다는 논리를 밀어부친다면 그 진앙지는 분명 여의도가 될 것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주요 정당 당사 주변의 즐비한 각종 요식업체들 가운데 명성 높은 남도음식점이 있는 것은 이제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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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남도음식점이 명멸해간 여의도에서 16년째 같은 자리에서 문을 열고 있는 집이 있다면 분명 국회쪽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맛집이 분명할 것이다. 원효대교와 대방동을 잇는 여의대방로 인도네시아대사관 건너편 한 빌딩 2층에 자리한 ‘고흥맛집’은 여의도에서 전라도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집이다. 특히 호남출신 의원들을 비롯해 홍어 등 남도음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주 메뉴는 앞에서 열거한 전통적인 전라도 계절 음식을 기본으로 갑오징어찜, 병어조림, 쭈꾸미무침, 매생이, 장어탕 등이 별미로 꼽힌다. 산지에서 재배한 재료로 직접 담그는 각종 전라도식 김치(갓김치, 파김치, 묵은김치 등등)는 별도 판매가 될 정도로 인기 짱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 집의 성공은 ‘사람’이다. 좋은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돈독한 집의 음식 맛은 꼭 먹어봐야 아는 게 아닐 것이다. 주인 김나현씨는 주로 의원들인 단골손님들로부터 ‘고흥댁’이라는 고향냄새 물씬한 애칭으로 불린다. 그 별명만으로도 그가 손맛이 뛰어나고 붙임성 또한 특별한 주인이란 걸 짐작케 한다.

'고흥댁’은 2005년 처음 음식 장사에 뛰어들어 2007년 ‘미스터홍탁’이란 옥호로 홍어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직송한 식재료로 신선한 전라도음식을 제공한다는 전단지를 돌렸는데, 그것을 들고 찾아온 첫 손님이 당시 ‘전 국회의원’이던 박주선 의원이었다고. 단박에 단골이 된 박 의원의 향도 아래 미스터홍탁이 신속하게 정치권(?)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홍탁씨가 정계 데뷔한 것 까지는 나무랄 데 없는데, “향이 쎈” 그를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을 터, 홍어 냄새가 국회차원(?)에서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좋기만 한 홍어향이 예약에는 불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고흥댁은 메뉴에서 홍어를 빼는 대신 가게 이름에서 홍어를 뺐다. 옥호가 ’고흥맛집’이 된 사연이다. 2012년 7월 9일이 재개업일이라는데 이날 온 첫 손님이 공교롭게도 최근 총리가 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  정총리에 앞서 총리가 될 뻔했던(?) 김진표 의원이다. 두 사람의 사인지가 가게 중앙의 큰 벽시계에 아래위로 붙어 있다. 그런 미묘함 때문일까? 고흥댁이 물어보지도 않은 답을 한다. “우리 가게 오신 의원님 가운데 배포로 첫손꼽으라면 단연 김진표 의원이세요. 주문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술을 시키면 꼭 저를 불러 먼저 한 잔주시죠. 애쓴 주인이 먼저 잔을 받는 게 도리라고.”  기자를 상대하는 주인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시다. 선량들의 덕담 사인이 괜히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 하얀 사인지들을 살펴보니 맨 위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니나 다를까 노회찬이다. 

“인생의 맛을 여기서 보았습니다. 2007.12.26. 노회찬”

고흥맛집이 재단장한 뒤 처음으로 찾은 날 남기고 간 것이라고 한다. 날짜를 보니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1주일 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고, 민주노동당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분열의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렇게 돌이켜보니 왠지 노회찬이 남긴 글귀가 다소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의 회고에 따르면 노회찬은 그러나 사인을 마치고  "저 사인이 빛을 볼 날이 꼭 있을 겁니다"라는 말을 주인에게 남겼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잠시 주춤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전도뿐 아니라 전체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바로 옆에 이낙연 전 총리의 사인이 보인다. 전남 영광 출신의 이낙연은 보성출신의 박주선 등과 더불어 고흥맛집의 오랜 단골 중 한 사람이다. 

“인생의 맛을 알 때쯤엔… 2007.4.28. 국회의원 이낙연” 

그의 사인에도 ’인생의 맛’이 들어 있다. 2007년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갈라져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등 당명마저 계속 바뀌고 있던 시절이니 복잡한 정치판의 요동에 그의 심사가 복잡했을 듯하다. 아니면 막걸리 애호가답게 담백하게 고흥맛집의 홍어와 막걸리 맛을 상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두 사람의 사인은 대구(對句) 처럼 나란히 게시된 것은 이낙연의 제안이었다고. 이런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후 이낙연이 총리가 되고, 노회찬이 정의당 원내대표가 되면서 다시 이어졌다. 이낙연이 국무총리가 된 다음날인 2017년 6월1일 정의당 원내대표 자격으로 노회찬이 신임총리를 예방했을 때, 이낙연이 기자들에게 말한다. 

“노회찬 원내대표님과는 같은 막걸리집 단골입니다, 언젠가 취중에 ‘인생의 맛을 알 때쯤엔…’이라고 낙서를 해 놨더니, 노 대표님이 그 아래 ‘인생의 맛을 알겠습니다’라고 응수했습니다. … 총리공관이 역사상 막걸리를 가장 많이 소비한 공관이 되도록 소통하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노회찬에게 총리공관에서 다시 막걸리 회동을 하자고 했고 노회찬도 화답했다. “총리공관 막걸리 맛을 보고 나서 공관에 없는 막걸리를 한통 갖다드리겠습니다.”

2달여 뒤인 8월 6일 당시 정의당 지도부(당시 이정미 대표, 심상정, 노회찬, 윤소하, 김종대, 추혜선 등 소속의원 6명 전원)가 모두 참석한 만찬이 총리공관에서 열렸다. 노회찬은 이 자리에서 이낙연에게 막걸리 두 병을 선물한다. 막걸리 이름도 낙연주(洛淵酒). “총리께서 효모가 살아있는 이 생쌀 막걸리를 맛있게 드시고,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민생 정책을 펴주시기 바랍니다…”

이때 노회찬이 이낙연에게 선물한 ‘낙연주’는 노회찬의원실에서 막걸리를 가장 잘 빚는 박규님 보좌관(현 노회찬재단 운영실장)의 솜씨가 발휘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막걸리 회동 이후 고흥맛집을 찾는 노회찬의 발길도 부쩍 잦아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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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고흥맛집에서 도모한 생애 마지막 사업이 있다. 2018년 4월부터 2018년 7월 노회찬이 타계할 때까지 존재한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이다. 소수정당이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고지가 교섭단체 지위(20석)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6석. 노회찬은 이 벽을 넘기 위해 마침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민주평화당(14석)과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일에 적극 나섰다. 이 ‘모의’의 주된 장소가 고흥맛집이었다. 노회찬은 두 당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기에 이르자 당시 민평당 원내내표인 장병완 의원과 함께 춤을 출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다. 

"노의원님이 춤추는 걸 그때 처음 봤어요. 무슨 좋은 일이 있나보다 했는데…" 말을 잇지 못하던 고흥댁이 덧붙인다. “우리 집에 수많은 의원들이 오시고 또 많은 단골이 계시지만, 일반 손님들이 먼저 악수를 하고 싶다고 청하는 의원은 노의원 뿐이었습니다. 노의원님도 테이블을 돌아가며 일일이 모두 악수를 해주고 함께 사진도 찍고 그랬습니다.”  

그해 4월2일 두 당이 국회에 공동교섭단체로 등록하면서 노회찬이 첫 원내 사령탑을 맡게 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14년간 비교섭단체 소속이었던 ‘소수 당 의원’ 노회찬에게 이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는 “14년 전 첫 등원 때만큼 떨린다”면서, 국회의장과 다른 당 원내대표, 두 당 소속의원 모두에게 봄꽃 야생화를 직접 심은 화분을 보냈다. ‘봄이 옵니다. 노회찬’이라는 문구를 화분 하나하나에 꽂으며 여의도에도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던 그의 염원은 너무도 빨리 끝났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노회찬이 타계하면서 한 석이 모자라게 돼 결국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그만큼 노회찬의 마지막 선택은 계산되지 않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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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의 이런 저런 대화가 끝날 무렵 이정미 의원이 들어온다. 오늘의 초대 손님이시다. 몰랐는데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인천 송도·연수) 당선을 위해 벌써 3년째 뛰고 있단다. 지역구민들을 만나는 귀한 시간을 쪼개 기꺼이 노회찬 추억에 동참해 주셨다.

노회찬 이정미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사실 썩 유쾌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2003년쯤 제가 자주파 추천으로 당에 들어왔는데, 평등파인 노대표(당시 당 사무총장)님 눈에는 그게 좋게 보이지 않았나 봐요.” 그러나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마음의 코드가 맞아갔다.  계파는 달랐지만 당의 통합과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잘 맞았기 때문. 그때까지 와인을 못 먹어 봤던 이정미에게 처음으로 달콤씁쓸한 와인 맛을 알려준 사람도 ’미식의 문화인’ 노회찬이었다.  둘은 곧 좋은 술친구가 되었다.

“2008년 분당된 뒤 3년쯤 진보정치의 공백이 있었는데 그때 통합파들이 ‘진보의 합창’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통합의 공감대를 쌓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노대표님이 청와대 앞 한 스테이크집으로 절 초대해 스테이크와 와인을 사주셨죠. 그날 돈 많이 썼을 거에요. 처음 맛본 와인 맛에 빠져 3병이나 마셨으니."

그렇게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해별관이라는 해산물집에서 종종 일합을 겨루기도 했다는데, 한번은 둘이서 40도짜리 소주를 10병이나 분음했다는 믿거나말거나한 전설을 들려준다.

“주량은 제가 늘 한수밑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제 주량이 노대표님을 추월하기 시작했어요. 그날도 둘 다 내가 질세랴 하고 마셨던 것 같아요.” 그 술을 다 마실 때까지 무슨 얘기를 했을까? “노대표님이 음식에도 전문가가 된 것은 그 넘치는 호기심과 문화욕구때문이 었을 거예요. 대화를 해보면 정말 많은 책과 영화를 읽고 보고, 많은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을 감상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깊이와 순발력을 가지고 계세요. 한마디로 대체불가!”

그는 요즘 노회찬이 그립다. 코앞으로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의당의 목표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그와의 대화가 그립다. “그의 지혜와 전망이 우리당에 얼마나 큰 힘이 될지를 생각하면 그의 부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이정미는 정기국회 종료 뒤에는 매일 인천 송도·연수 지역구를  누빈다. 왜 힘든 지역구 출마냐고 물었더니 “진보정당의 미래는 재선 지역구 의원의 등장부터”라고 말한다. 진보정당 의원이 자기 지역구에서 재신임을 받는 일이 결코 이변이나 신기한 일이 아닐 때 비로소 이념정당이 대한민국 정치에 뿌리내리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건배하지 않을 수 없다. 꼭 당선돼서 돌아오라! 그렇게 이정미의 필승을 외치며 일행은 다같이 해창막걸리 잔을 높이 들었다. 노회찬, 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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