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재단 소식

민들레(20호) 문화인 노회찬 - 민들레 단상(斷想)

재단활동 2020. 12. 31




 

문화인 노회찬

민들레 단상(斷想)  


 

‘노회찬정신’이란 ‘투명인간’이나 ‘민초’ 그리고 ‘민들레’같은 표현이 통념화된 ‘민중을 위하여, 민중처럼’이란 인생철학의 정신을 말한다.

필자는 20여년 전, 청계산 옥방(獄房)에서 철사가 촘촘히 박힌 뙤창 너머로 뒤뜨락에서 무덤덤히 자라는 소담한 일곱 포기 민들레의 생태를 연일 유심히 관찰하면서 민들레가 사회와 인생에게 주는 계시에서 큰 깨달음 얻었다. 

일주야(一晝夜)를 단위로 햇살을 따라 꽃이 피고 지며 변색하는 그 오묘하고 심원한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민들레를 흔하고 수수하며, 다른 꽃들처럼 아양을 떨지 않는다고 하여 업신여기고 하찮게 보는 것은 무례한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겉보기에는 나약하고 다소곳하지만 도심의 시멘트블럭 틈새에서도 피어나며, 밟혀도 꺾이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과 일편단심의 충정, 천지개벽의 근력을 간직하고 있는 민들레야말로 만물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본래 민들레의 원산지가 한반도일진대, 그 속성과 기질, 정서를 그 누구보다도 오롯이 간직하고 체감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겨레다. 그리고 민들레가 갖는 상징성과 그 가치를 누구보다도 깊이 터득하고 선양한 사람은 바로 이 시대의 혁신적 선구자 고 노회찬 의원이다. 따라서 그를 기리는 <민들레>지 발간은 당연지사다.

꼭 5년 전 11월, ‘중국 대장정 답사’의 귀로에서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그와의 마지막이자 가장 긴 면대면 대화는 서로의 생각을 구김없이 주고받은 잊을 수 없는 대화였다. 때마침 신생 정의당은 노 의원이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창의적으로 제시한 그 감동적인 ‘6411번 버스정신’을 ‘노회찬정신’으로, 당 건설의 기치와 방향타로 공식화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 ‘6411번 버스정신’으로 옮겼다. 이 대목에서 대화의 핵심은 민들레로 상징되는 투명인간에 관한 공유인식이였다. 노 의원은 그 버스의 소외된 승객들인 투명인간들이 겪고있는 고달픈 일상과 명색이 ‘진보당’이라고 하면서도 그들을 보듬키는커녕 그들의 곁에 다가서지도 않은, 그래서 구경은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은’ 투명정당의 꼬락서니가 되고만 현실에 대한 뼈저린 자성, 그리고 ‘더 낮은 곳’에 내려가 그들과 함께 명실상부한 진보적 민중정당을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 등을 그토록 명쾌하고 차분하게 설파하는 것이었다.

노 의원 서거 첫돌을 맞아 모란공원에서 거행된 추모식에서 숱한 민들레들을 실어나르던 그 초록색 ‘6411번 버스’ 조형물과 눈길이 마주쳤을 때, 홀연히 1년 전 이역에서 부음에 접하자 메모노트에 남긴 절규가 북받쳤다. “이 바보같은 사람, 죽다니, 살아서 이겨야하지! 죽음은 지는 거야! 이 못난 사람아, 비통하도다!!!”

그렇다, 노회찬은 ‘위대한 바보요, 못난 사람’이다, 오로지 ‘하찮은’ 투명인간과 민들레를 위해 바보처럼, 못난 사람처럼 살아왔으니까, 그러나 그는 분명 명수죽백(名垂竹帛, 이름이 청사에 길이 빛남)할 이 시대의 ‘사건창조적 위인‘이다.


-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 소장)


공유하기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에 공유하기
트위터
카카오톡에 공유하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