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재단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후원회원 이야기

2023년의 노회찬이라면

“이렇게까지 나라가 빨리 망가질 줄은 몰랐다” 이런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 정치의 퇴행이 보수정권,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빠른 속도로 시민과 노동자들의 삶이 망가져 가고 있다. 이런 시기에 노회찬 의원님의 부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가 없다.

부대표였던 시절, 노회찬 의원님께 정의당 청년정치학교 강의로 <진보 정치의 역사와 가야 할 길>에 대해 부탁드렸던 적이 있다. 강의를 통해 "현실 속에 영향력 있는 진보정치”를 어떻게 꿈꾸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인민노련에서부터 진보정치의 길을 걸으며, 보수 양당으로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동의 문제를 당사자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로 확대하고 국민 다수의 보편적 행복을 위한 길을 고민했다.

노회찬이 없는 지금, 고통 받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최후의 보루였던 진보정치가 갈 길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로 야당은 여당의 폭주를 막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치가 스스로 “영향력의 정치”를 포기한 결과, 우리는 엄혹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가 있었던 그 해 겨울, 노회찬은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을 냈다. 그리고 전국을 돌며 진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대중을 무시하지도 않고,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존재라며 늘 치켜세우는 자세로 시민과 소통했다.

10.29 참사와 노동탄압, 이명박 사면.. 모든 것이 퇴행하는 시대에, 노회찬이라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시민들 앞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솔직하게 진보정치의 잘못도 털어놓고, 우리가 손 맞잡고 싸워야 할 거대한 적, “외계인”이 누구일지도 지목했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세대와 성별로 갈라진 대한민국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싸운다고 더 나아질 미래는 없다며, “행복해지길 두려워하지 말자”고 시민들을 설득해나갔을 것이다.

노회찬이 지키고자 한 진보정치의 가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에 발을 딛고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대중과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진보정치가 “진보의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해 시민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청년들과 열린 공론장을 열어 “청년 노회찬”이라면 공정의 가치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토론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3주기, 성수역 지하철 입구 앞에서 성동 당원들과 함께 의원님의 어록과 사진을 함께 추모하며 길거리 전시를 했었다. 한 50대 여성 시민이 본인은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노회찬만큼은 좋았다"며 사진을 어루만지던 모습이 아련하다. 그 시민이 노회찬을 좋아했던 이유는 본인이 정치적 이슈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갈등적 사안에 대해 유쾌하고 탁월한 비유로 현실 정치와 시민들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노회찬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청년정치가 가야할 길에 오랜 기간 고민해왔지만, 요즘 들어 2030들의 정치적 욕구들이 표면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 누구도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체념에 가까운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왜 나보다 못난 사람을 공직자로 앉혀서,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하나”라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 말은 반대로 좋은 정치인, 좋은 정치세력을 갖고 싶다는 강력한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20대의 보수화를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2030에게 진보정치의 가치들이 충분히 지지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2030에게서 “노회찬”과 같은 진보 정치인의 부활을 꿈꾼다. 모든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질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가난한 청년에게도, 좋은 정치인 한 명만큼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좋은 정치인, 좋은 친구가 되어, 이 세대에 정치하는 즐거움을 다시 만들고 싶다.


- 정혜연 (전 정의당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