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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47호) 특집 - 후원회원 모임 함맞비 <서촌기행> 후기

재단활동 2023. 04. 14





특집기사

물길을 알면 길을 알게 되고, 길을 알게 되면 역사를 알게 된다

 

노회찬 재단에서 주최한 동아리 <함께맞는비(이하, 함맞비)>의 4월 모임에 참여하였다. ‘오래된 서울’의 저자인 김창희 기자님과 함께 하는 <서촌답사> 프로그램을 신청하고는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총 25명은 4월 1일 아침 종교교회 앞에서 모인 후 반나절 동안 서촌 일대를 답사한 후에 故노회찬 의원의 단골맛집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 일정이었다.

이때, 우리의 집합장소인 종교교회라는 이름은 宗敎(religion)가 아니라, ‘琮橋(bridge)가 있던 동네 이름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종교(琮橋)의 존재 근거는 조선 성종 때 우의정을 지냈던 허종과 허침 형제가 연산군때 갑자사화의 화를 면하게 된 일화를 갖고 있다는 <종침교터> 표지석 덕분에 확실해졌다. 지금은 복개(覆蓋: 하천이 흐르는 위를 콘크리트로 덮음)되었지만, 종교교회 주변의 종교는 인왕산 수원지로부터 경복궁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 흘렀음을 짐작할 수 있는 하천 주류를 건너는 다리였을 것이다. 또한 하천 지류는 동서 방향으로 흘렀을 텐데 이는 사직단 방향으로 조성된 왕의 길, 왕도(現 파크팰리스 아파트 앞길)도 하천의 방향과 평행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명언을 듣게 된다. 김 기자 가로사대 “물길을 알면 길을 알게 되고, 길을 알게 되면 역사를 알게 됩니다.” 이로써 참여자 누구든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흐름과 굽은 정도 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왕도에 서서 사직단을 바라보면 인왕산과 사직단과 왕도가 일직선상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 건축학적으로 터미널 뷰(terminal view)라고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광화문도 터미널 뷰일까? 대답은 No! 경복궁과 그 뒤의 봉우리는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 건국 당시 다소 원거리에 있는 남쪽 산과 북쪽 산과 일직선상에 놓이도록 배치하지 않았나 짐작이 된다. 

인왕산 순환도로를 오르면서 김홍도의 <북일령도>에도 그려진 황학정 국궁터를 거쳐, 송덕기와 신한승의 택견 수련터를 지나 안평대군의 집터가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다다라서 가쁜 숨을 달래었다. 수양대군 탓에 단명하게 된 단종과 안평대군 이야기를 나누며, 안평대군의 은거처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버지 세종대왕의 염려를 헤아려 자신의 집을 그 어느 곳에서도 왕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마련한 안평대군이었다. 거처의 이름은 비해당, 수성궁(現 동네명은 수성동)이었고 별장은 부암동에 이르기까지 넓었다. 안평대군이 자신의 꿈을 설명하여 그리도록 했던 안견의 <몽유도원도>로써 그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꿈이란 평소 어떤 이가 활동하는 곳에서의 활동이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순환도로를 내려가면서 왼쪽으로는 인왕산의 주봉이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북악산(또는 백악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두 산의 사이 멀리에는 심오한 스카이블루 색상의 북한산(또는 삼각산)이 보였다. 이번 기회에 서울의 주요 세 산의 이름을 명확히 알고 간다, 좌 인왕산/ 우 북악산/ 중 북한산!

하행길 대부분은 윤덕영과, 조선시대의 극성스러웠던 세 성씨(안동 김씨, 여흥 민씨와 해평 윤씨) 처족이 장악했던 옥류동 일대였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윤덕영이 매국노 이완용보다 훨씬 더한 매국노였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행길에 만난 윤동주 하숙집 터; 화가 박노수 교수의 집터; 선왕의 후궁들 처소였던 자수궁(現 군인아파트); 목사 현순 부자와 딸 현 엘리스의 거처; 이여성과 이쾌대 화가 형제가 살던 집터(現 세종아파트); 시인 김광규 교수의 생가 터와 시인 이상 건축가가 입양되어 살던 큰댁 가옥을 만났다. 이 지점에서, 최선을 다해 결정했을 자신의 행동이 한반도 분단의 역사와 맞물려서 후대에는 뒤틀려진 개인사를 알릴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 

역사적으로 옛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4개동(적선동, 안국동, 가회동과 서린동)을 되뇌이며, 누상동과 누하동의 지명으로는 누각 터를 짐작해보게 되었다. 서울시 도로 위의 다양한 표지석들이 보다 정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품으면서 통인시장 내의 맛집 <쉼>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였다. 반나절을 지침없이 가이드하셨던 김창희 기자와의 담소 꽃이 피어나던 자리이기도 했고, 또한 저서 ‘오래된 서울’ 독자들과의 팬미팅이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서로 친밀한 교류를 나누게 되어, 다음 모임에서도 꼭 다시 만나자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힘들었을 일정에도 투정부리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어린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아름다운 벚꽃이 만개한 인왕산을 딸과 함께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노회찬 재단측과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김창희 기자님께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 권희정 (재단 후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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