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소식
[민들레(54호)] <6411 영화제>로 만난 우리 시대 투명인간‘들’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노회찬재단은 한국예술영화관협회와 함께 <제1회 6411 영화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영화제는 지난 여름 <노회찬 6411>로 인연을 맺은 시네마 6411의 최낙용 대표와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최낙용 대표는 오랜 기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을 뿐만 아니라, 이화여대 안에 있는 예술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멀티플랙스가 독점하고 있는 영화계 환경으로 인해 문화예술의 공공적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암울한 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민들은 거대자본이 투입된 상업영화라는 제한된 후보 중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고, 대부분의 독립‧예술 영화들은 상영관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지난 30여 년간 지역의 ‘도서관’ 같은 역할을 해온 많은 예술영관들은 펜디믹 이후 고사 직전에 있습니다. 6411 정신을 담은 좋은 영화들을 초청해 전국의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하고, 한 작품을 선정하여 개봉지원금을 주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6411 영화제의 얼개는 구성했지만, 실무를 준비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 어떤 영화제가 있는지 조사를 해 보았더니, 제가 찾은 것만 크고 작은 영화제가 221개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영화제가 있는데, 6411 영화제는 어떤 목표와 의미를 가질까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트나인의 주희 이사는 “영화제도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 같은 역할”을 한다며, 영화제를 통해서 “다양한 영화를 초청하고 보고 그러는 것”이라고 영화제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신문도 하나만 보면 안 되듯이 영화도 여러 다양한 영화를 봐야 하듯이 영화제는 많으면 많아질수록 좋다는 겁니다.
다음, 어떤 영화를 초대할 것인지, 영화제 개최 시기는 어떻게 할지, 예술극장들과 상영표 협의는 또 어떻게 할지 점검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미개봉작 중에서 6411 정신을 담고 있는 영화를 초대하기로 하고, 전주영화제, 부산영화제, 독립영화제 등 올해의 주요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들을 검토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12월 초 독립영화제가 끝난 후에 6411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해외배급팀장을 역임한 최하나 프로그래머가 결합하면서 실무 준비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초청 후보작을 극영화 6편과 다큐영화 4편 등 10편으로 정하는 동시에 재정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때 초청작품의 감독님과 배급사에서 전향적으로 상영료 없이 출품을 해 주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감독이나 배우가 관객과의 대화(GV)에도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전국의 독립예술극장에서도 주말 오후 시간에 상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회찬재단에서 기본 사업비를 확보하였지만,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영화제를 위해 소셜펀딩을 진행했습니다. 같이가치 캠페인에 직접기부(210명)와 참여기부(2,589명)이 참여해 주셨고, 정의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노조와 시민단체가 영화제 후원단체(47명/단체)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남은 과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예술영화관에서 6411 정신을 담은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도록 홍보하는 일이었습니다. 홍보 시간과 인력, 재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이윤이 아닌 영화의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독립예술극장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지역의 예술극장 대표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하였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손으로 영화 간판을 그리는 88년 된 광주극장, 경북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인 안동극장, 동인천역 뒤편 보물같은 공간인 미림극장, 영화를 통해 골목을 살리고 싶었다는 창원의 씨네아트 리좀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한편, 재단의 이성재 홍보국장이 호소력 있는 포스터와 카탈로그,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를 만들었고, 노회찬재단 회원께 알리고 언론과 SNS 등을 통해 홍보했습니다. 올해 마지막 노회찬재단 함께데이는 ‘6411영화제 개막식’으로 시작하여 초청작품 중 하나인 ‘해야할 일’을 관람하고, 감독과 배우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습니다.
<뿌리 이야기>의 김광인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이후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6411 영화제를 소개하는 글은 저에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건설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삶 주변에 노동의 고통과 아픔만 있는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 있다고 전하고 싶어 시작한 영화였는데, 그 의미와 잘 맞는 영화제였다고 생각합니다. 6411의 의미처럼 저 또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노동자에게 토양이 되고, 이름 없이 불리는 사람의 이름을 세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1회 6411 영화제는 끝났지만, 시작에서 던진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윤으로 바라보는 거대한 시장의 문법에 맞서 영화의 공공적 가치에 주목하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문화 다양성을 고민하고 있는 영화 제작진과 예술극장을 응원합니다. 무사히 영화제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곁을 내주신 감독님과 배우, 제작사와 배급사, 예술극장,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지 않겠습니다. 잘 점검하여 <제2회 6411 영화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회원여러분께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